응급의학과 의사로 산다는 것은...

응급의학과 의사가 응급실에서 위급한 환자와 가족을 만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커질 수록 차갑고 냉철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곳 응급실에 오는 환자는 단순히 감기나 독감 환자가 아닙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부상, 폭력에 외상 등으로 인해 상태가 위독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밤이 되고 하늘 가득 어둠이 드리워지고 가로등 불빛처럼 생명의 불빛이 깜빡이는 곳에서 야간 근무를 하며 매일 다른 응급 환자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곳! 그곳이 응급실이며, 저와 같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일하는 곳입니다.

얼마 전, 술에 취한 여행객이 호치민 시내의 고급 호텔 5층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하여 뼈가 노출되고, 상처가 너무 심해 출혈양이 어마어마한 상태였습니다. 여행객의 얼굴은 창백했고, 알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긴급 수혈과 통증을 줄이는 조치를 긴급히 요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피가 여기저기 낭자한 상황이어서 출동한 의료진의 안전도 신경써야만 했고, 이 와중에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려 하는 행인까지...현장에 출동한 저와 같은 응급의학과 의사는 배의 우두머리인 선장과 같이 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 해야만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도전적이며, 높은 성취감을 줍니다. 저는 사업가, 의사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차분한 환경에서 앉아서 미세한 장비들을 일용해 진료와 치료를 하는 안과를 전공으로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응급의학과의 경우 모든 것이 완전히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응급 의학과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을 때 사건 사고가 없었던 날은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 정도 다이나믹한 사건의 연속입니다. 제가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의사로서의 성취감, 자부심 때문이며,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던 환자가 병원을 나갈때 환한 웃음을 보여줄 때 가장 행복함을 느낍니다.

경련을 일으키며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가 있다면, 열성 경련인지 술이나 약 때문인지 원인을 신속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약을 뒤섞어 조제하기도 하고, 어떤 약을 복용하는지도 모른체 약을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응급실에 응급벨이 울리면, 당일 응급출동 담당의는 하던 모든 일을 간호사와 다른 의사에게 넘기고 즉시 구급차를 타고 출동합니다.

구급차가 도착한 곳에 어떤 상태의 환자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외국인 환자에게 응급상황이 닥쳤는데 베트남어를 할 줄 몰라 운전기사나 다른 베트남인이 대신 전화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은 보통 전화로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그저 "환자가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라는 말만 듣고 갔다가 화장실에서 출산을 도와준 적도 있었습니다.

새벽 2시경 이었습니다. 한 영국인 여성이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진통이 시작되었고, 양수는 터져서 새고 있었습니다. 이 영국인 여성은 혼자서 출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화장실은 위생적이지 않았고, 출혈이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아기가 나온 후 태반이 나오고...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산모가 침착하게 힘을 주자 아기가 나왔으며, 출산까지 고작 20분 걸렸습니다. 이것이 제가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집에서 출산을 도왔던 케이스로 기억됩니다. 다행히 산모는 건강했고, 아기는 엄마의 몸에서 빠져 나온 후 정상적으로 울음을 터뜨렸고 피부는 정상적인 핑크빛이 돌았습니다. 태줄을 자르고, 태반이 나온 후, 아기가 엄마의 체온을 느낄 수 있도록 엄마가 아기를 가슴에 품게 했습니다. 저희 의료팀은 산모와 아이의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날이 밝을 때 까지 돌보았습니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의료진이 환자 건강에 찾아온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의사의 의무이며, 책임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투약하는것 뿐만 아니라 환자를 안심시키고, 환자를 응급실로 데려온 가족들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환자의 건강상 문제점을 확인하는 것 외에도 긴박한 상황을 조율하고, 가족들과 환자의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는 모든 일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응급의학과 의사로서의 일이 더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외국인 의사로서 베트남에서 일하다 보니 문화적인 차이도 충분히 인지해야 할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는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전염성 질병이 아닌 암으로 타계했더라도 방을 소독해야 하며, 장례를 위해 기름과 동전을 요구한 적도 있습니다. 때로는 베트남 전통 의료를 연구해야 할때도 있습니다.

다행히 이곳 베트남은 대량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나라는 아닙니다. 저는 응급의학과 전공이지만 재난의료 분야를 부전공 하였습니다. 제가 살던 필리핀의 고향의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비가 내리고 있었고, 야간 근무 중이었습니다. 어떤 해고된 경찰관은 분을 이기지 못해 미쳐 날뛰다가 여행객이 탄 버스를 인질로 잡고 다섯명을 사상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하필 응급실은 레노베이션 중이었는데.. 세상에나! 환자들이 응급실에 들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5명은 이미 사망하였고, 3명의 환자는 위독한 상태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위독한 환자만 치료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최루가스를 마신 사람, 폭발로 인해 포탄 파편에다 유리조각 까지 박혀있는 환자까지 동시에 돌봐야 하는 아비규환의 상황이었습니다.

또 다른 폭발물에 의한 대량 사상 사고도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병원 검사 센터 밖에 폭발물이 든 가방을 놓고 사라졌고, 곧이어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30여명의 사상자가 병원으로 실려 들어왔고, 삽시간에 응급실은 고통의 신음소리로 가득찼습니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새내기 여학생은 사로로 인해 다리가 잘려나갔고,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으며, 혈압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다리에 아무 느낌이 없어요!" 라고 묻는 여학생에게 의사로서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필리핀 고향에서의 사건들을 떠올리면, 응급 의학과 의사로서의 책임감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베트남에서는 이와 같은 대량 사상 사건이 많지 않아 너무 다행이지만 만약의 사태에 항상 대비해야 합니다.

야간에 갑작스럽게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응급 의료 지원 번호로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제가 근무하는 병원의 응급 의료 지원 번호는 *9999 (별표 9999) 입니다. 집, 호텔, 길거리 어느 곳에서든 응급상황이 닥치면 핫라인으로 전화 하시면 트레이닝 받은 응급 콜센터 직원이 즉시 응대합니다. 정확한 상황, 환자의 바이탈, 위치정보 등을 알려주시면 도움이 됩니다. 응급팀이 아파트 카드가 없어서 엘레베이터에 갖혀 있지 않도록 1층 문앞에서 길을 안내해 주시면 환자에게 도착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침착하셔야 응급 상황을 잘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늦은 밤시간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전화를 끊지 마시고 응급팀이 도착할 때까지 환자 상태를 알려주셔야 합니다.

기도에 문제가 생겨 호흡 곤란, 혈액 순환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응급상황이므로 신속히 응급실을 방문하셔야 합니다. 의료진은 이런 저런 질문을 할것이고, 정맥 라인을 잡고, 심전도와 산소 포화도를 확인하고, 엑스레이를 찍는 등 매우 바쁘게 움직일 것입니다. 보통 환자와 보호자들은 바로 치료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시간 동안을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음식물 섭취 시간은 언제였는지, 지난 5시간 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을 여러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의료진이 너무 직설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냉정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응급실에서는 모든 것이 신속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참고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응급의학과 의사로서의 직업은 이렇습니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합니다.

응급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휴일이건 야간이건 가리지 않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뛰어야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호치민시의 병원은 응급 의료 지원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 구급차 대수를 두배로 늘렸습니다. 의료 서비스에 접근성이 높아질 수로 사이공은 더 안전한 도시가 될것입니다.

닥터 알란 (Dr. Ronald Allan A. Paras), 호치민 패밀리 메디컬 프렉티스